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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떼고리》
2026/9/22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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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떼고리는 김나현, 박경빈, 이지은의 3인전 《까떼고리》를 개최한다. 세 작가는 어떤 사물이 바로 그 사물이게끔 하는 조건을 흔든다. 그리고 그 조건이 흔들린 이후에 대해 어느 정도씩 상상하게 한다. 효력 잃은 문서는 허물을 벗고, 깨진 유리는 비행을 하며, 뒤집힌 바구니는 공간을 기울어뜨린다.
김나현의 〈만료된 재류자격증명서〉는 해외 체류를 위해 발급받았던 문서를 얇은 아크릴 수지에 전사한 결과물이다. 법무성 직인이 찍힌 행정 문서는 배달 식품을 싸는 비닐 껍질처럼 구겨지고 눌러붙어서, 활자와 QR 코드는 알아볼 수 없게 뭉개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문서를 소지한 자의 권리를 더 이상 보증하지 못하게 된 서류의 무력함이 아니라, 체류나 이동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이처럼 얇고 덧없는 막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손에 쥐면 곧 녹아 없어질 것 같은 이 젤라틴질의 표면은 행정적 효력을 잃는 대신, 또 다른 힘, 이를테면 부력의 작용을 받는다. 그것은 더 이상 경계를 열거나 닫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경계 없는 공간을 떠다니듯 부유하는 것이다.
박경빈의 〈이카루스〉는 파손된 강화유리를 그대로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 작품의 제목은 이 충돌의 정황을 신화 속 비행의 서사와 겹쳐 읽게 하는데, 특히 유리 파편이 ‘밀랍’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한다. 밀랍은 오래 전부터 균열을 메우거나 조각을 붙이는 데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작가의 관심은 깨진 유리를 복원하는 데 있다기보다, 봉합에 의해 균열이 지속되고 가시화되는 일종의 역설을 향해 있는 듯 하다. 밀랍으로 접합된 유리판은 견고해 보이지만,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언제든 다시 흩어져버릴 수 있는, 조건적이고 위태로운 상태이다. 여기서 밀랍은 추락을 교훈적으로 봉합한다거나, 추락 이전의 상태를 복원하지 않고, 추락 이후의 또 다른 비행을 생각하게 하는데 그 독특한 의미가 있다.
이지은은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라탄바구니를 브론즈로 주조했다. 이른바 ‘기념비 조각’의 전통과 밀접한 재료인 브론즈는 역사나 기억을 고정하는 재료로 사용되어 왔지만, 〈Halber Korb〉에서 작가가 기리는 것은 말 탄 영웅이나 우뚝 선 위인이 아니고, 바닥에 엎어진 바구니다. 작품은 바구니의 익숙한 외양을 취하고 있음에도, 지나치게 무겁고, 반쪽만 남아 있으며, 사물을 담을 수 없게 뒤집혀 있다는 점에서 '바구니다움'을 이루는 조건들로부터 몇 발짝 벗어나 있다. 전시장의 벽과 바닥이 직각으로 만나는 지점에 밀착된 브론즈 바구니는 사물을 담는 용기에서, 공간을 뜻밖의 방식으로 읽게 하는 새로운 참조점으로 전환된다.
김나현(b.2001)은 서울대학교에서 회화와 인류학을 공부했고,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다. 서보아트스페이스 (2026, 서울), 홍대 상상마당 (2024, 서울)에서 단체전을 가졌다. 관악문화재단 청년 작가 지원사업 (2026), 서보미술문화재단 창작지원금 (2026), 하동철 창작지원상 (2025) 등에 선정되었다.
박경빈(b.1999)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과 예술사 과정을, 서울대학교에서 조소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온수공간 (2025, 서울), COSO (2024, 서울), 아트스페이스3 (2022, 서울) 등에 참여하였고, 주요 소장처로는 머니투데이, 대만 MUZI Art Gallery 및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미술아카데미가 있다.
이지은(b.1984)은 국민대학교, 브레멘 예술대학교, 뒤셀도르프 예술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CICA 뮤지엄 (2026, 김포), 크비텐바움 갤러리 (2023, 뮌헨), 비젠바흐 갤러리 (2019, 쾰른) 등이 있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비젠바흐 갤러리(2024, 쾰른), 뒤셀도르프 쿤스트할레(2017, 뒤셀도르프) 등이 있다. 2015년 DAAD 매칭펀드 장학생으로 선정되었고, Jaron&Amann GmbH, 21PS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